홈 > 교회안내 > 교회역사
3. 교회의 부흥과 분열
1955년2월20일 이날 개최된 당회에서는 400여명의 교세로 증가한 교회의 운영을 원활히 하고 성도의 영적성장을 위하여 구역분할하기로 하고 12구역으로 나누었다. 이처럼 교회 는 성장을 거듭하였지만 교회가 속해앴는 노회는 분쟁을 일삼는 그릇된 본을 보여와서 왕십리교회는 노회에서 탈퇴하고 말았다.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 산27에 소재하고 있는 교회동산은 1959년에 매입하였다. 한 교단이었던 장로교회가 오늘날 4분5열된 모습에서 보여주듯 한국장로교단은 진통을 겪었고 그 아픔의 후유증은 왕십리교회에서도 찾아왔다. 자유주의신학과 신학교, 신사참 배, WCC등의 문제가 커지면서 교회내에서도 분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런문제로 표재환장로측과 서재신목사의 노선의 차이로 인해서 직접적인 대결양상을 보 이다가 양쪽 다 절대로 함께 할 수 없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래서 당회는 평화로운 타결 을 모색하게 되었고 다수의 본교회측은 본당에 남고 표재환장로측은 유치원시설과 교회 동산을 분배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 왕십리중앙교회(통합)으로 분리되게 되었다. 이 후 왕십리교회는 분리로 인하여 해이해진 성도들의 열의와 약체가 된 교회를 일으키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1961년 도봉구 우이동소재 우이중앙교회(여전도회)설립을 필두로 강남구 소재 신천교회 (남전도회)를 지원보조하고 1962년에는 안양에 석수교회(여전도회)를 세웠다. 1964년에 는 성남시소재에 모란교회(여전도회), 경기도 광주 신장교회(남전도회), 1965년에는 경기 도 파주 운천교회(여전도회)를 설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