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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0월, 왕십리교회 설립 60주년과 함께 서재신 목사 성역 32주년을 맞아 기념예배 를 드렸다. 왕십리교회에 부임해 와서 시무 17년째에 교회 설립 60주년을 맞는 서재신 목사의 다음과 같은 감상어린 말에 60년의 왕십리교회를 단편적으로 엿볼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 원하신 섭리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와 성령님의 보호하여 주심으로 맞은 60주 년은 진정 감격에 넘치는 해입니다. 이제 안식의 70년대의 밝은 새아침에 밝아오는 새 시 대를 향해 복음진리의 횃불을 들고 강력한 전진을 선언하면서 먼저 만유의 주 성삼위일체 의 존전에 감사와 찬송과 기도를 드립니다." 수없이 많은 대내외의 복음전도와 인재를 양성하여 훌륭한 주의 종을 길러내고 유치원을 설치 경영하면서 아동교육울 위한 성경구락부 창설, 공민학교를 교회사업으로 발전 운영 해 왔다. 양적으로는 500세대의 대가족으로 불어난 성도들을 거느리고 10여 처소의 개척교회를 세 우는 등 60년의 발자취는 고난과 고통, 아픔으로 점철되었으나 보수신앙의 굳센 기치는 단 한폭도 퇴색됨이 없이 의연한 자세로 60주년을 맞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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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에는 안정과 완숙기에 접어들어 내외적으로, 양과 질적으로 견고한 하나님의 성이 된 왕십리교회는 국내외의 개척과 선교를 하기로 하였다. 우선 국내에 개척교회를 세우기로 하였고 미자립교회를 보조하기로 하였다. 개척교회는 서울남부교회(1971년), 서광교회(1971년), 신천교회(1973년), 서광교회(1976년), 성내제일 교회(1976년), 제천서문교회(1977년), 속초효성교회(1977년)등이며 미자립보조교회는 세 동교회(1972년), 제천동막교회(1976년), 창동교회(1976년), 함평운산교회(1976년), 강화용 정교회(1976년)등이다. 1970년 1월 당회에서는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키로 결의하고, 같은해 5월, 선교사의 자질과 합당한 요건을 갖춘 신홍식 목사를 선교사로 선정하게 되어 그해 6월 선교대상국을 태국 으로 정하고 태국에서도 문명의 혜택을 거의 못받은 오지로 파송했다. 최초의 선교사를 둔 왕십리교회는 정식으로 해외선교부를 설치하였고 이 선교부를 이끌도 록 초대회장에 홍병희 장로, 서기 김석창 집사, 회계 신두종 집사를 선출했으며 후에 본 선교부의 활동을 보다 강화케 하기 위해 그 소속을 재직회 산하에 두어 참여도를 한층 높 이며 활용의 폭을 넓혔다. 여기에 파송된 선교사 신홍식은 언어와 문화, 생활관습과 전통이 전혀 다른 태국에 가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고, 기도와 땀과 피로 얼룩진 선교 의 결과로 3년만에 예배처를 독립케하여 육성한 청년 성도들에게 맡기고, 두 곳을 더 세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과를 얻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다. 신홍식 선교사는 후에 안식년으로 귀국하여 있다가 동년 선교학을 연구하기 위하여 가족 과 함께 도미하였다. (왕십리교회 70년사, 왕십리중앙교회 90년사 발췌) |